산드라 블록, 강인한 여성 캐릭터 세 번째 작
'언포기버블'은 '그래비티'(2013)와 '버드박스'를 포함해 산드라 블록의 강인한 여성 캐릭터 3부작으로 봐도 좋다. '그래비티'에선 우주 한가운데 홀로 남겨졌다가 지구로 돌아오고, '버드박스'에선 눈을 뜰 수 없는 인류 종말 상황에서 두 아이를 지키고, '언포기버블'에선 두 번이나 땅바닥에 엎드려 경찰에게 포복을 당하는 순간을 겪어야 했음에도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눈물을 흘릴지언정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 무적과 싸우는 화려한 액션 연기보다 스스로와 싸우는 내면 연기가 전투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냉기 가득한 삶을 표현
배우 산드라 블록에게로 모든 시선이 모인다. 그 인물이 처한 현실과,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낸 과거의 한을 가까스로 풀어가는 영화로, 이유 있는 사연과 그 안에서 역시 이유 있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담아냈다. 산드라 블록은 그의 얼굴이 곧 영화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감옥을 나설 때의 굳은 표정과 인파에 휩싸여 거리를 건널 때의 당혹스러운 표정, 호감을 보이며 다가온 남자에게 설레다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눈물을 삼키는 표정 변화까지, '버드박스'에서 보여준 모성애 연기보다 다채롭고 단단한 연기로 감동을 준다.
명품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특급 앙상블
출소 후 루스가 만난 인물들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먼저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루스에게 동정심을 품은 변호사 존 잉그럼 역을 맡았다. 그와 반대로 루스를 경계하는 리즈 잉그럼 변호사 역은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맡았다. 이어 존 번탈은 루스에게 호감을 보이는 공장 동료 블레이크 역을 맡았다. 블레이크는 루스와 같은 배경에서 자란 인물로 루스를 미소 짓게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루스가 변호사 부인과 말다툼하는 장면은 역시 명배우인 비올라 데이비스와 벌이는 팽팽한 연기 접전도 압권이지만 산드라 블록의 오열 연기는 숨을 고르게 만들 정도로 화력이 세다. 여동생을 입양한 부부로 출연한 리처드 토미스와 린다 에몬드, 보호감찰관 역의 롭 모건 등 중견급 배우들의 기량 넘치는 연기도 압권이다.
영화 내용
루스(산드라 블록)는 경찰을 살해한 죄로 20년 수감생활을 한 후 풀려난다. 전과자 신분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녹록치 않지만, 생선 다듬는 일, 건축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면서 유일한 혈육인 동생 케이티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케이티를 찾는 여정은, 루스의 과거를 알아가는 여정과 같다. 루스 역의 산드라 블록은 아주 마르고 피폐해 보인다. 루스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삶의 밑바닥을 살아내고 있는 한 인물이 오로지 동생을 만나겠다는 생각만으로 버티고 살아가는 그 모습 속에는, 남다른 강인함도 배어 있다. 있는 힘껏 살아내는 와중에 살인자라는 이유로 냉대를 받기도 하고 피해자 가족의 협박을 받기도 한다. 루스 역할이 가지고 있는 깊은 사연과 험악한 현실이 산드라 블록을 통해 드러난다. 수십 년의 아픔을 홀로 간직한 인물로, 내면에 켜켜이 쌓인 인물의 시간과 그 한이 처연하게 전해진다. 또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강단이 때때로 표출되면서, 루스의 절실함이 그만큼 위태롭게 전해진다. 20년 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며 모든 것을 잃게 된 인물이, 자신의 모든 것인 케이티를 찾아가는 힘겨운 여정이 담긴 영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한시도 마음 가벼울 일 없는 인물을 표현한 배우 산드라 블록 덕분에 더욱 묵직한 울림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주인공 루스와 세 가족
루스와 연결되는 첫 번째 가족은 보안관이었던 아버지를 잃은 두 형제다. 그들은 ‘겨우 20년’을 살고 나온 루스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이들 가족의 삶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집안 장면만 봐도 짐작이 간다. 형은 당한 대로 갚아주자며 사적 복수를 계획하고 만류하던 동생은 루스를 직접 만나 판단해 보기로 한다. 법이 매긴 죗값을 치렀다고 해서 가해자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과 분노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두 번째 가족은 루스의 동생을 입양한 부부다. 그들은 입양한 딸이 안정된 삶을 살도록 애써왔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딸은 트라우마를 딛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펼치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살인죄로 복역한 친언니라는 사람이 찾아와 딸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부부는 루스로 인해 가족의 행복이 깨질까 두렵다.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이해하면서도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긴 장본인이니 루스와 양부모 어느 한 편을 들기 쉽지 않다. 마지막 가족은 루스와 동생이 살던 옛집의 새 주인이 된 변호사와 그의 아내다. 변호사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불청객 루스를 경계하는 대신 선뜻 호의를 베푼다. 그 인연으로 루스가 동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의 아내는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침범한 루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다가 남편의 노력을 헛되게 만든 루스를 매섭게 질타한다. 두 번째 기회는 누가 결정하는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피해자는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된다. 두 형제는 루스에게 복수할 것인지, 루스는 동생을 만날 수 있을지, 20년 전 그날 벌어진 사건의 전모가 무엇인지, 여러 갈래 긴장의 끈을 쥐락펴락하던 영화는 마지막 25분에 모든 것을 밝힌다. 폭포수처럼 터져 나올 감정의 물꼬를 트는 타이밍의 절묘함, 예상 가능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쉬운 선택이 아닌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한 감독의 신중한 연출이 적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룩업, 미친 라인업의 블랙 코미디 (0) | 2022.04.03 |
---|---|
더 길티, 모든 소리는 단서가 된다! (0) | 2021.12.30 |
맬컴과 마리, 잔혹한 사랑과 경멸의 밤 (0) | 2021.12.30 |
6언더그라운드, 2019년의 마지막 모든게 터진다! (0) | 2021.12.21 |
버드박스, 살고 싶다면 아무것도 보지 말라! (0) | 2021.12.20 |
댓글